1550년 지금의 경기도 양주시 회천읍 율정리에 임추(任樞 : 1482∼1534년) 사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신도비이다. 임권(任權)이 글을 짓고, 이택(李澤)이 글을 썼다. 자는 사균(士均)이며,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아버지는 공조판서를 지낸 유겸(由謙)이며, 어머니는 정부인(貞夫人) 예안 이씨(禮安李氏)이다. 1507년 생원시와 문과에 합격하여 승문원에 뽑혔고, 예문관검열·성균관전적 등을 역임했다. 1513년 지평을 지낸 뒤 다음해에 교리가 되었다. 또한 장령이 되어 언관의 역할 및 언로의 개방에 대해서 상소하였다. 이후 전한·직제학·좌부승지 등을 역임하고 1530년 좌승지로 경상도감사에 발탁되었으며, 다음해에 한성우윤이 되었다. 1533년 그 자신은 동지사(冬至使)로, 아들은 질정관(質正官)으로 함께 명나라에 파견되는 영광이 있었지만, 돌아오는 길에 순직하였다. 부인은 하양 허씨(河陽許氏)로서 한산군수(韓山郡守) 수(邃)의 딸이며, 부인과의 사이에 3남을 두었다. 비문의 기록을 통해 임추의 사적과 그 집안의 이력을 살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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