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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문(碑文) 묘지(墓誌) 불상 명문 종명(鐘銘) 도검명(刀劍銘)
  목간(木簡) 토기 명문 와전명(瓦塼銘) 기타  
 
 

돌을 다듬어서 세운 비석에 새긴 문장으로, 기록된 정보량이 많고 남아 있는 숫자도 비교적 많아 금석문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비석은 비(碑)와 갈(碣)로 나누기도 하는데, 비는 긴 직사각형 모양 으로 잘 다듬은 것으로 5품 이상 고위 관료만이 세울 수 있었다. 갈은 자연석의 한쪽 면만을 다듬어서 둥글게 만들었 으며 6품 이하가 쓰는 비석이었다.

하지만 이 둘은 엄격하게 구분되지 않고 통용되는 예가 많았다. 비와 갈 모두는 중국 한(漢)나라 때 묘비(墓碑)로 부터 출발하여 발달했으며, 원래는 아무런 글자도 새기지 않은 백비(白碑)였다가 역시 한나라 때부터 죽은 이의 공덕을 기록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단양신라적성비
비석의 종류는 비문의 내용에 따라 여러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어떤 사실이나 인물, 건물의 내력 을 기록한 기적비(紀績碑) - 이는 다시 기공비(紀功碑), 송덕비, 정려비, 유허비(遺墟碑), 묘정비 (廟庭碑) 등으로 나뉜다 -, 무덤 앞에 세워 그 주인공의 신원과 약력을 기록한 묘표(墓表), 일종의 묘비로서 능묘의 동남쪽에 세우는 신도비(神道碑), 국왕의 순수(巡狩) 사실을 기록한 순수비, 승 려의 사리탑 부근에 세워 그 생애와 행적을 적은 탑비(塔碑), 국경비 등이다.

비석의 외형은 일정한 형식을 갖추고 있다. 보통 용의 머리에 거북 몸통을 한 귀부(龜趺)가 몸돌인 비신(碑身)을 받치고, 비신 위에는 이무기가 서려 있는 모양의 이수(?首)가 올려져 비석을 보호한다. 시기가 내려오면 귀부는 기단 형태로, 이수도 지붕 형태로 바뀌게 된다. 이수에는 그 비문의 제목인 제액(題額)을 쓰는데, 한자 서체 중 전서(篆書)를 쓰게 되므로 보통 전액(篆額)이라고 한다. 그리고 비신의 앞면을 비양(碑陽) 혹은 비표(碑表), 뒷면을 비음(碑陰)이라고 부르고, 비음에 적는 글을 음기(陰記)라고 한다.

비문의 작성 방식은 종류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기본 순서는 공통된다. 즉 비문에 들어갈 기초 자료를 수집하여 문장을 짓고, 제목과 내용을 정성들여 쓴 다음 석공(石工)이 이를 받아 다듬은 돌에 대고 정교하게 조각을 한 다음, 귀부, 이수와 맞추어 건립하는 것이다.

특히 통일신라 선종승려 들의 탑비(塔碑)를 보면, 국왕이 명을 내려 최치원(崔致遠) 같은 당대 최고의 문장가에게 비문을 짓게 하고, 신라의 명필인 김생(金生)의 글씨를 일일이 모아서 고급 석재에 조각한 경우도 있다. 조선 중기 사대부 의 묘비 가운데도 당대의 문장가요 명필로서 양송(兩宋)이라 불리던 송시열, 송준길의 문장과 글씨로 쓴 것이 있어, 전통시대에 비석과 비문이 갖는 의미와 중요성을 짐작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