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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때 김재로(金在魯)는 고려, 조선의 탁본을 『금석록(金 石錄)』에 실었다. 같은 시기에 활동한 김정희(金正喜)는 청 나라 고증학풍의 영향을 받아 전국의 저명한 금석문을 조사 하고 깊이 있는 연구도 내놓은 당대 최고의 금석학자였다.


『금석과안록(金石過眼錄)』『완당척독(阮堂尺牘)』은 그 연구의 성과가 담겨 있으며, 특히 북한산 진흥왕순수비를 판독하고 그 내용을 고증한 바 있다. 오경석(吳慶錫)이 지은 『삼한금석록(三韓金石錄)』은 삼국 이래 금석문의 목록과 몇가지 금석문의 판독문 전문을 싣고 이를 고증했다.

그리고 홍양호(洪良浩)는 그의 문집인 『이계집(耳溪集)』에 삼국, 고려의 주요 금석문 목록을 실었고, 서유구(徐有?)는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 고대~조선의 유명한 금석문 이름과 소재지, 건립 연대 등과 함께 자신의 의견을 덧붙였다. 이밖에 금석문을 수집, 연구한 대표적 인물로 이익(李瀷), 안정복(安鼎福), 조인영(趙寅永), 정약용(丁若鏞)을 들 수 있다.

한편 청나라 사람 유희해(劉喜海)는 삼국, 고려시대 금석문의 판독과 이에 대한 고증을 『해동금석원(海東金石苑)』으로 정리했다. 왕창(王昶)의 『금석췌편(金石萃編)』에도 일부 우리의 금석문이 실려 있다. 그리고 일제시대에는 조선총독부가 전국의 금석문을 6년 동안 조사하여 탁본 1천여 점을 제작, 조사하고 그 결과 1919년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을 간행했다.

이 작업을 주도한 일본인 학자가 갈성말치(葛城末治)로서 한국 금석문에 대한 개설적 연구와 낙랑~고려의 주요 금석문에 대한 연구를 묶어 『조선금석고(朝鮮金石攷)』를 펴냈다. 등전양책(藤田亮策)과 금서룡(今西龍), 점패방지진(鮎貝房之進)도 일제시기 주요한 금석문 연구자였다. 해방 이후 우리 학자들이 다시 금석문을 본격적으로 정리, 연구하기 시작했다. 황수영(黃壽永)의 『한국금석유문』, 이난영(李蘭暎)의 『한국금석문추보』, 허흥식(許興植)의 『한국금석전문』은 이미 나온 금석문 자료집에서 빠졌거나 새롭게 발견된 자료들을 수록하고, 집대성한 것이다.

이밖에 김용선(金龍善)은 『고려묘지명집성』을 펴내 고려 묘지명 자료들을 모았고, 조동원(趙東元)에 의해 일부 지역의 금석문 탁본이 『한국금석문대계』로 편찬되었다. 지방 자치단체별로 지방사를 정리하면서 그 지역 탁본이 정리된 경우도 있다. 또 금석문 탁본을 주제로 한 전시회가 개최되어 탁본을 실제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최근에는 단순한 탁본의 정리, 판독문 제시에서 한 걸음 나아가 판독문의 정밀한 비교와 번역, 주석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한국고대사회연구소 편의 『역주 한국고대금석문』, 이지관(李智冠)의 『교감 역주 역대고승비문』이 대표적인 연구 업적이다.